
그 매체가 영상, 텍스트, 만화, 음성 무엇이 되었든 거기에서 나오는 순수한 웃음을 좋아한다.
굳이 덧붙이자면 주제는 심각할수록, 해학은 자극적일수록 그 갭이 커져 매력적이며
덕분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역시 아주 즐겁게 읽었다.
읽는 동안 피식피식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행복했고, 그와 함께 주제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주제는 간단히 말하면 칠레 쿠테타를 배경으로 주인공 마리오의 인간적 성장을 그린 소설 정도로 말 할 수 있겠다.
좌파 대통령 아옌데가 쿠테타로 물러나고, 군부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안되어 지지자였던 국민시인 네루다 역시 병사하게 되는 슬픈 역사를 그렸다.
이렇게 배경만 보면 한없이 장엄한 역사소설이 떠오르지만,
작가는 이를 정치판에서 한 걸음 떨어져 네루다가 살던 마을 이슬라 네그라의 우편배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한적한 어촌의 게으른 니트 마리오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직장을 구하는데, 그 직장이 바로 우편배달부이다.
마리오의 일은 단 하나 전 세계에서 네루다에게 전해지는 수많은 우편물을 하루 단 한 번 건네주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불만도 잠재우고, 용돈도 벌고,
덤으로 네루다에게 사인이라도 얻어 여자애들 인기라도 끌어볼까라는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마리오는 시인의 집을 오간다.
하지만 사인 받을 기회만 보다가 그의 시집 한 권을 다 읽어버린 마리오는 그 때부터 시인과 대화를 시작한다.
시에 대해서, 그리고 메타포에 대해서.
마리오는 시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말의 아름다움, 그리고 시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아직은 시인의 시를 베껴서 감정을 표현할 뿐이지만 덕분에 아름다운 아내 베아트리스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결혼하기 전 베아트리스의 장모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데 특히 매력적인 한 구절을 뽑자면 이렇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마리오는 결혼 이후에도 시를 통해 성장한다. 스스로의 시집을 준비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뱉는다.
그가 가장 존경해 마지 않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근간을 이루지만
우파 정치인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말하고, 사람들을 자신에게 동조시킨다.
네루다는 노벨상을 받고 아옌데 정부를 위해 프랑스 대사로 일을 하게 된다.
그 동안 마리오는 네루다의 부탁을 받아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녹음해서 보낸다.
네루다가 부탁한 파도소리, 종소리, 바람소리 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우는 소리,
그리고 새 우는 소리를 녹음하다가 덤으로 녹음 된 마리오의 상스러운 욕소리까지
한 없이 평온 할 뿐 아니라 생명력이 넘치는 소리들은 네루다에 대한 그의 사랑과 존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평온은 계속되지 않고 마을에는 점점 물자가 부족해져간다.
정부의 무능, 우파의 공작 등 소문은 무성하지만 무엇하나 정확하진 않다.
네루다는 병환으로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병세가 심각해 마리오는 그를 만나지 못한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쿠테타가 터진다.
마을에도 군인들이 진주하게 되고 전 좌파 거물 네루다의 집 주변은 그들의 경비가 삼엄하다.
이미 네루다와의 교류와 시를 통해 성숙한 마리오는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우체국으로 향한다.
그의 스승 앞으로 온 전보와 편지를 모두 외워서 집으로 숨어든 그는 그 내용을 전하다가
병세가 악화된 스승을 업고 뛰쳐나오게 된다.
네루다는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게 되고 며칠 뒤 마리오 또한 번호판이 없는 차에 끌려가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줄거리를 다시 회상하면서도 느꼈지만, 이 책은 초. 중반의 유쾌함과는 반대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극적으로 어두워진다.
그럼에도 읽기를 잠시라도 쉬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다소 무책임하고 주관이 없어 보이는 마리오가
그의 스승과 시를 통해 성장하며 세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그 반대의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밝히고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시, 그리고 서정성이 그를 성숙시킨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있는 곳을 직시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그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네루다와 처음 대화를 나누며 한 마리오의
"선생님은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라는 질문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타포란 원래 있던 사물에 스스로 생각해 낸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처음엔 마리오처럼 타인의 것을 모방하더라도 끊임없이 모방하고, 읽고, 생각하는 와중에 자신만의 메타포를 형성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주어진 상황, 타인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어진 그 이상의 선택을 할 수 없다.
주제위주로 쓰고보니 별로 유머러스한 책으로는 안보여도, 작중 인물들은 모두가 유쾌한 시인이다.
네루다만큼 세련되지는 못해도, 투박한만큼 솔직하고, 또 그만큼 유쾌하다.
한마디 한마디에 해학이 살아있으니 읽어보면 알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블로그는 다른 사람들이 안 읽으니까 이 글을 보면 다시 읽어라 '나'
추가로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든 구절을 꼽자면
"유식한 척 하는 양반, 유물론자가 뭐요?"
"장미와 통닭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할 때 항상 통닭을 집는 사람이지요"
나라면 대부분의 경우 통닭을 집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배가 부르지 않더라도 변덕이나마 장미를 집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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